타이포그래피 01

나는 최성민 디자이너의 특강을 단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typographic design)을 명확하게 구분지으려 했고, 나는 그 관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주 쉽게 구별하자면, 타이포그래피는 책을 위한 것이고,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은 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상업적 시각물들을 위해 타이포그래피에 더해진 것이다. 따라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을 다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타이포그래피

20세기 중반까지는 단행본과 책들이 대중매체의 주를 이루었기에,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책들은 ‘읽기에 편한 책을 만드는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 주력해왔다. 따라서 현란한 장식보다는 전체 펼침면을 가득 채우는 글자들이 얼룩덜룩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고른 밀도로 분포되어 글을 읽는 사람이 내용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신경쓰이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포그래피의 가장 근원적인 임무는 ‘가독성(readability)'이다. 디자이너의 개성, 폰트의 멋짐, 간격의 변화, 구성 요소들의 대비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덕목들이 적어도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탠리 모리슨(Stanley Morison)이 지적한 것처럼 19세기 후반 출판산업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만을 위한 아주 저열한 출판물들이 범람하고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어느 정도는 참작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순수하고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퍼들의 눈은 놀랍도록 섬세하기 때문에, 현재를 포함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들의 눈을 만족시키는 고품질의 타이포그래피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장인이자 공예가였다. 현재 한국의 출판물들 중에서도 정말 극소수의 ‘헌신적인' 디자이너들만이 박봉을 감수해가며 이 숭고한 공예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어쨌든 공예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 전통적인 정신을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배웠다면 낱자, 낱말, 글줄, 문단 사이사이의 공간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어딘가 비균질한 부분이 없는지 찾아낼 수 있는 일정의 ‘섬세함'을 키워야 한다. 아직도 유물처럼 학생들의 과제사이에서 뜬금없이 출몰해서 당혹스럽게 만드는 윤고딕 300시리즈는 형태면에서는 딱히 모자람이 없는 폰트이지만 따옴표를 포함한 몇몇 구두점들의 앞뒤 간격은 이 폰트 자체를 사장시킬 만큼의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윤고딕 300시리즈를 쓰고, 글자의 크기를 줄여서 과제를 제출하는 것은 적어도 디자인과에서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300시리즈의 과장된 따옴표 앞뒤 공간은 너무 ‘휑~’하기 때문에 우리 아파트 수위아저씨가 놀라서 쫓아와 ‘여기 구멍났는데 막아야 하는거 아니유?’라고 조언할 수준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어떤 기술이 아니라 태도를 길러야 하는데, 그것은 ‘글자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이다. 이것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이 말한 디자인과 학생에게 데생이 필요한 이유와도 같다. 사물을 묘사하는 건 디자인과에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아니지만, 모든 사물의 대한 관찰력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글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인데, 공간이 고르게 짜여진 줄글과 문단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이 ‘글자사랑 잠재력’을 측정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서량이다. 타이포그래피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항상 이기는 게임이다.

만일 타이포그래피에 ‘영어 행간은 1.2배, 한글인 경우 1.5배’와 같은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면 굳이 사람들이 타이포그래피를 다룰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러한 ‘자동 간격 조정’에 대한 몇 번의 첨단적 시도들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김형진 78). 절대적으로 적당한 간격이라는 것은 정하기 어렵다. 호훌리가 지적했듯 글자를 사람이 읽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 인공지능이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017년 현재는 그렇다.

인쇄된 글자와 독자사이의 그 어떤 것도 ‘읽는’행위를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 ‘타이포그래피는 투명해야 한다’라는 비어트리스 워드(Beatrice Warde)의 말이 바로 이러한 아주 전통적이고 유서깊은 타이포그래피의 커다란 줄기에 마침표처럼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