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19세기 초중반 대중들이 책을 읽고 구매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책은 잡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했고 광고에는 장식이 아닌 그래픽이 삽입되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구매로 이어지기 위한 적자생존의 결과였다. 이에 대한 상위문화의 반동으로 추상미술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다(엇 이러다 자리 뺐기겠는데? 뭐 이런…). 그리하여 20세기의 그래픽 디자인은 결과적으로 이 커다란 두 가지 흐름이 조우하는 ‘현대주의’가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말레비치가 고안한 단색의 사각형과 여백의 만남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것은 ‘티나지 않게 고르고 균질한 질감’이라는 타이포그래피의 미덕과는 대척점에 있는 깨달음이었다. 사각형은 만능이어서 그것은 시대가 바라는 규칙, 효율, 체계, 반복과 같은 합리적인 세상만들기에 전적으로 최적화된 마술봉이었다. 이 사각형은 훗날 국제 양식이 되고, HTML이 된다.

그래서 역시 아파트는 성냥갑이 진리다. 우리가 2017년 지금도 여전히 사각형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면. 풍광좋은 강원도 고속국도변의 산비탈에 성냥갑 아파트 한두 동이 생뚱맞게 서 있는 풍경과 수도권 아파트 밀집지역들의 밭고랑과 같은 모양새가 무척이나 한국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면.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은 얀 치홀트가 쓴 저서를 루어리 매클린이 영어판으로 번역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요점은

 

 

 

대비다.

이것은 믿을 만한 얘기다. 왜냐하면 내 생각이 아니라 얀 치홀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이 갖는 가장 큰 효과는 디자인 속에서 대비가 가장 극명하게 되었을 때 나타난다(치홀트 78).

대비가 현상화된 표현으로 ‘구성(Composi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입시구성할때의 그 ‘구성’ 말이다. 여러분이 어떤 글자가 포함된 구성을 만들었는데 마치 순백의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지, 안드는지를 통해서 대비가 잘 표현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간단히 체크할 수 있다. 갤러리에선 소화전도 미술품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것은 고르지 ‘않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스마트폰에는 ‘세로로 무한한 페이지’가 사용되며, 그것은 아주 작은 화면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만약 웹페이지에 과도한 여백이 사용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뜬금없이 나타나는 빈 공간에서 독자들은 이 페이지가 끊겼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사용자를 안심하게 만들어야 하는 제프 래스킨의 또 다른 커다란 원칙에 위배된다. 스마트폰, 즉 스크린 위에서도 여전히 대비가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요약. 중요한 내용은 여러 번 언급해야한다는 교훈을 토대로.

인쇄된 책의 본문을 조판하기 위해서는 가독성(readability)과 고른 질감에 주목하는 타이포그래피가 필요하고 인쇄된 책을 제외한 나머지 시각물에 글자를 삽입하기 위해서는 타이포그래피에 더불어 판독성(legibility)과 대비를 통해 중요한 정보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또한 필요하다. 서체를 디자인하는 것 또한 본문용으로 읽힐 것인가 아니면 제목용으로 눈에 뜨일 것인가에 따라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